디지털 기피 세대였던 시장 상인들, 변화의 중심에 서다
전통시장은 오랫동안 '현장감'과 '사람 냄새'로 대표되어 왔다. 시장 상인들은 말 한마디에 단골을 만들고, 손님 얼굴을 기억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세상이 빠르게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전통시장 역시 변화의 문턱 앞에 놓였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결제·모바일 주문·디지털 청구서 등의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었고, 이는 시장 상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제가 되었다.
60대의 A 사장님은 인천의 한 재래시장에서 20년째 떡집을 운영하고 있다. 늘 손으로 장부를 쓰고, 물건을 외상으로 주고받던 A 사장님은 최근 스마트청구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생소하고 두려웠지만, 지금은 "그거 하나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손님의 외상 거래를 정리하고, 문자로 자동 청구서를 보낼 수 있게 되면서 A 사장님의 가게 운영에도 큰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이 글에서는 A 사장님의 사례를 통해 전통시장에서의 디지털화가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1. 외상장부와 노트에서 스마트청구서로: 변화의 시작
A 사장님의 떡집은 단골 손님이 많은 편이다. 특히 근처 초등학교와 경로당, 작은 식당에서는 떡을 대량으로 주문하고 한 달 뒤에 결제하는 외상 거래가 일반적이었다. 이전에는 노트에 손으로 날짜와 금액을 기록하고, 월말에 전화로 하나하나 결제 요청을 해야 했다. 전화도 잘 안 받는 손님이 많아 돈 받는 데 몇 주가 걸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중 시장상인회를 통해 소상공인 디지털 전환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되었고, A 사장님은 처음으로 '스마트청구서'라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는 외상 거래 내역을 스마트폰 앱에 입력하면, 손님에게 자동으로 청구서를 보내주고, 결제 링크까지 함께 제공되는 시스템이다. 처음엔 "내가 이런 걸 어떻게 하냐"고 걱정했지만, 교육을 받으며 천천히 사용법을 익혀갔다.
A 사장님은 스마트폰 화면을 작게 느꼈고, 터치도 낯설어 했다. 하지만 몇 번 직접 입력해보고, 단골 손님에게 청구서를 보내본 뒤로는 말이 달라졌다. "장부 안 써도 되니까 진짜 편해요. 문자로 청구서 보내니까 손님들도 빨리 돈을 보내줘요." 그는 이제 외상 장부를 들고 다니지 않는다. 손님도 편하고, 사장님도 편해진 것이다.
2. 청구서 자동화가 불러온 신뢰의 변화
스마트청구서를 쓰기 시작하면서 손님들과의 관계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외상금액이 얼마인지 서로 헷갈리는 경우도 많았고, 어떤 날은 "지난주에 냈다"고 우기는 손님도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청구서 시스템에서는 거래 내역이 명확히 남기 때문에, 쓸데없는 말싸움이 줄어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결제 속도였다. 이전에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돈을 달라고 말해야 했기 때문에 미안함도 컸다. 하지만 문자로 청구서가 자동 발송되자 손님들도 부담 없이 입금을 하기 시작했다. A 사장님은 "내가 입금 요청 안 해도 알아서 해주니까 신기하더라고요"라며 웃는다.
게다가 일부 단골은 청구서를 통해 다시 떡을 주문하기도 했다. 메시지 안에 가게 이름, 전화번호, 제품명이 자동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일종의 디지털 명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스마트청구서 하나가 고객과의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준 것이다.
3. 디지털화는 사장님의 시간을 바꿨다
예전에는 월말이면 장부를 펼쳐놓고 계산기 두드리며 밤늦게까지 정산하던 날이 많았다. 손님이 빠트린 금액이 있으면 다시 전화 돌리고, 기록이 틀리면 의심도 사고, 돈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지만 스마트청구서를 도입한 뒤로는 하루 10분이면 모든 거래를 마감할 수 있다.
A 사장님은 "그 시간에 떡을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죠. 아니면 일찍 쉬죠."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디지털화는 단지 기술이 아닌 시간을 되찾아주는 도구가 된 셈이다.
특히 명절 시즌처럼 주문이 몰릴 때는 효과가 더 컸다. 주문서 관리, 외상 정리, 반복 문의 대응 등에서 디지털 툴의 힘을 실감했다. 그는 이제 주변 상인들에게도 "스마트청구서 한번 써보라"고 적극 추천한다. 어떤 사장님은 QR결제를 연동하기도 했고, 또 다른 사장님은 스마트스토어와 연결해 주문을 받고 있다. 전통시장 전체가 서서히 바뀌고 있다.
4. 전통시장과 디지털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위한 변화
스마트청구서 하나가 전통시장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여전히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상인들도 있고, 기술 도입을 꺼리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하지만 A 사장님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디지털화는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변화로 작용할 수 있다.
전통시장은 단순한 상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디지털 변화는 단지 매출을 올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신뢰가 더해지고, 시간이 절약되며, 상인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디지털화의 목적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전통시장 디지털화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 실용적인 지원이다. A 사장님의 변화처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이어질 때 전통시장은 더 단단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있다. 디지털 기술은 그것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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