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지 않는 손님, 디지털로 손님을 ‘찾아가는’ 시대
전통시장은 오랫동안 ‘찾아오는 손님’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 상인들은 골목 입구에 서서 “떡 나왔어요~”를 외치며 고객의 발걸음을 기다렸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그 방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발길이 뚝 끊긴 시장 골목, 한산한 점포 앞에서 많은 상인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왜 안 오지?” 그런데 정답은 단순했다. 사람들이 ‘시장에 안 오는 게 아니라’, ‘앱으로 사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강북의 한 전통시장 안에서 25년째 떡집을 운영해온 60대 E 사장님도 처음에는 배달앱이라는 말 자체가 낯설었다. “떡은 직접 보고 사야지, 누가 배달로 사겠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앱을 시작하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는 젊은 고객들이 스마트폰으로 ‘백설기’, ‘수수부꾸미’를 주문하고, 단체 주문도 앱을 통해 들어온다. 이 글에서는 E 사장님의 ‘배달 도전기’를 통해 전통시장도 디지털 유통 채널을 통해 얼마든지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처음엔 반신반의, “떡을 앱으로?”라는 의심에서 시작
E 사장님의 가게는 주변 학부모, 어르신 단골을 중심으로 꾸준히 운영돼 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고객 연령층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했고, 젊은 층의 발걸음은 점점 끊겼다. 특히 코로나 시기에는 하루에 고작 2~3명만 들를 정도로 매출이 급감했다. 그러던 중 시장 상인회에서 ‘전통시장 디지털 전환 교육’이 열렸고, E 사장님은 처음으로 배달앱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처음엔 정말 믿기 어려웠죠. 누가 떡을 배달로 주문한다고…”라고 말하던 그는, 시장 내 청년 상인의 권유로 ‘배달의민족’ 입점을 시도하게 된다. 등록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다. 상호명, 메뉴명, 설명, 가격을 입력하고, 떡 사진을 몇 장 촬영해 올리기만 하면 됐다. 배달 포장도 어렵지 않았다. 원래 제사상이나 손님상에 낼 떡은 개별 포장이 돼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추가 포장 없이도 배달이 가능했다.
처음엔 일주일에 한두 건 들어오던 주문이, 어느 순간 하루 35건으로 늘어났다. 주문 고객 중 절반 이상은 2030 여성고객이었고, “엄마가 해주던 그 떡 맛”이라며 리뷰를 남겨주기도 했다. 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떡을 찾는 사람은 분명히 있었고, 내가 안 보였을 뿐이었구나.”
2. 배달앱이 바꿔준 일상의 흐름, 고객도 달라졌다
배달앱을 통해 새로운 고객층이 생기자, 사장님의 하루 루틴도 바뀌었다. 오전엔 예약된 떡을 만들고, 오후에는 배달 주문을 대비해 인기 상품을 중심으로 빠르게 포장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했다.
고객의 특성도 뚜렷이 달랐다. 오프라인 단골들은 대부분 ‘맛’을 기준으로 찾아왔지만, 앱 이용 고객들은 **‘리뷰’와 ‘사진’**을 통해 판단했다. 그래서 사장님은 딸의 도움을 받아 메뉴별 설명을 새롭게 쓰고, 스마트폰으로 떡을 찍어 **‘감성적이고 따뜻한 이미지’**를 강조한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리뷰 관리도 중요한 일이 됐다. 한 번은 떡 포장이 미흡해서 내용물이 찌그러졌다는 리뷰가 달렸고, 그는 직접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하고 다음 주문에 떡을 서비스로 넣어줬다. 그 결과, 해당 고객은 별 2개 리뷰를 삭제하고, “정말 진심이 느껴지는 사장님”이라는 댓글로 바꿔주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쌓이며 가게 평점은 점점 올라갔고, 단체 주문 문의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에서 100개, 고등학교에서 전통음식 체험용으로 50개 등 오프라인에선 없던 수요가 앱을 통해 발생했다. 전통시장이라는 틀을 넘어, 이제는 ‘지역 내 명물 떡집’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3. 배달앱 운영의 실제: 힘들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
물론 모든 것이 쉬운 건 아니었다. 배달앱은 ‘앱에 올리기만 하면 주문이 쏟아진다’는 식의 마법이 아니었다. E 사장님은 직접 메뉴 등록, 가격 설정, 배달 가능 시간 설정, 리뷰 응대, 사진 수정 등 운영에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혼자 해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으로 메뉴를 변경하거나, 휴무일 설정을 할 정도로 익숙해졌다.
배달비 문제도 고려해야 했다. 소비자는 배달비에 민감하기 때문에, 일정 금액 이상 무료 배달, 세트 할인 구성 등을 고민하게 됐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1인용 떡세트 메뉴를 신설했고, 그 결과 혼자 사는 고객의 주문이 늘어났다. 또 배달 지연 이슈가 생기지 않도록 인근 배달대행 업체와 협력해 배달 품질도 관리했다.
이 과정을 거치며 그는 단순히 앱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게를 ‘브랜드화’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메뉴 사진부터 포장, 리뷰, 응대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되었고, 고객들은 이 진심을 인식하고 다시 찾아왔다.
그는 말한다. “이제 떡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떡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더 중요해졌어요. 배달앱은 그냥 하나의 통로일 뿐이고, 그 안에 담기는 건 결국 사람과 정성이에요.”
4. 전통시장과 배달앱, 상극이 아닌 공생의 길
전통시장과 배달앱은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인다. 손으로 만든 떡, 수제로 볶은 반찬, 일일이 눈으로 보고 고르는 제철 과일 등은 디지털화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보고 사러 오는’ 시대에서 ‘보고 클릭하는’ 시대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변화에 전통시장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
배달앱은 더 이상 대형 브랜드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비자들은 오히려 ‘개성 있고 신뢰감 있는 가게’를 원하고, 그 기준은 진심 어린 운영에서 만들어진다. 전통시장은 이 진정성을 이미 갖추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창구, 배달앱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E 사장님의 떡집은 이제 매달 고정 단체 주문이 생겼고,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도 ‘앱에 올리면 손님이 늘어난다더라’는 얘기가 돌고 있다. 그는 여전히 손수 떡을 빚고, 고운 고물을 묻히며 하루를 보낸다. 달라진 것은, 그 떡을 찾아오는 손님의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전통시장 디지털화의 본질은 ‘전통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전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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