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런 건 젊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지.”
전통시장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많은 상인들은 디지털화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자신은 나이가 많아 어렵다는 인식부터 떠올린다. 스마트폰은 전화만 하고, 블로그나 배달앱, QR코드는 먼 세상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었고, 그 변화는 가만히 있어도 시장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오늘날의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흐름이다. 특히 젊은 소비자들은 ‘검색 후 방문’이 기본이기 때문에, 아무리 맛있고 정직한 가게라도 온라인에 흔적이 없으면 눈에 띄기 어렵다. 이런 시대에 60대 상인들이 차근차근 스스로 디지털 기술을 익혀가며 변화에 적응하고 있는 사례들이 전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서울의 전통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며 스마트스토어, 블로그, QR결제까지 하나하나 직접 배우고 활용하게 된 60대 상인 J 사장님의 실제 경험을 중심으로, 고령 상인들도 충분히 디지털 전환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디지털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시작하느냐’의 문제다.
1. 스마트폰은 전화만 하는 기계가 아니었다
J 사장님은 30년 가까이 떡집을 운영해왔다. 모든 거래는 손으로 쓰는 장부와 단골의 전화주문이 전부였다. 어느 날 딸이 “아빠 가게도 스마트스토어 해보면 어때요?”라고 제안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건 젊은 사장님들이 하는 거야. 나는 그런 거 몰라.” 하지만 몇 개월 후, 코로나19로 시장 유동인구가 줄고 단골의 발걸음도 뜸해지자 그는 고민에 빠졌다.
시장 상인회에서 진행하는 디지털 전환 교육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처음엔 교육장에서 스마트폰 앱을 켜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강사가 “딱 한 가지만 배우세요”라고 말하며 알려준 QR결제 사용법부터 시작했다. 고객이 QR코드를 찍고 결제하자, 바로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고, 그는 그 자리에서 “오, 이게 되는구나!” 하며 놀랐다.
이후 블로그 개설, 카카오채널 등록, 스마트스토어 입점까지 차근차근 도전했다. 하루에 한 번씩 글을 올리고, 리뷰가 달리면 직접 답글을 남기며, 그는 점점 ‘디지털 장사’라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 나갔다.
2. “어려운 건 처음뿐이더라고요” – 변화의 순간들
처음 블로그 글을 쓰려고 했을 때 J 사장님은 컴퓨터 앞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그날 만든 떡의 이름과 재료, 만드는 과정을 말하듯 적어 내려갔다. 그게 첫 글이었다. 사진도 스마트폰으로 찍은 한 장뿐이었다. 그런데 그 글을 본 고객이 “다음 주 예약하고 싶어요”라는 댓글을 남겼다.
그 순간 J 사장님은 깨달았다.
“그냥 손님한테 말하듯 쓰면 되는 거구나.”
이후 그는 사진도 조금 더 정성껏 찍고, 글도 짧지만 꾸준히 썼다. 스마트스토어에는 인기 상품 3가지를 올리고, 전화 주문이 오면 “스토어에서 주문하시면 할인돼요”라고 안내했다. 고객들도 편하고, 주문 정리도 쉬웠다. 단골 중 한 명은 “사장님, 이제 완전 온라인 사장님 다 됐네요~”라며 웃었다.
이 변화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사실 ‘기술’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해보니 할 수 있었고, 처음 한 번만 배우면 다음부터는 몸이 기억해줬다.
3. 디지털이 상인을 돕는다는 걸 느꼈다
디지털화는 단지 주문을 받는 방식만을 바꾼 게 아니었다. J 사장님의 하루 루틴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하루 종일 시장을 지키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면, 지금은 오전에 상품을 정리하고, 오후에는 블로그 글을 올리거나 스토어를 확인하고, 리뷰에 답글을 다는 시간이 생겼다.
전화 응대도 줄었고, 예약 주문이 늘어나면서 재고 낭비가 줄었다. 특히 명절에는 스토어를 통해 선물세트를 미리 예약받아 작업 계획을 세울 수 있었고, 배송도 정해진 날짜에 맞춰 나가도록 정리할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디지털 덕분에 장사가 재미있어졌다”**는 점이다. 손님이 블로그에 댓글을 달고, 스마트스토어에 후기를 남기며 “아버지 떡 맛있어요”라고 남기면, 그는 그날 하루의 피로가 싹 풀리는 기분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손님이 가게에서만 있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속에서도 함께 존재한다.
이런 연결은 J 사장님에게 ‘나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4. 디지털 전환, 누구나 할 수 있다 – 단, 천천히 하나씩
J 사장님은 아직도 블로그 글을 쓰기 전에는 메모지에 내용을 정리한다. 스마트스토어도 딸이 도와주는 부분이 많고, QR코드 출력도 상인회 청년이 도와줬다. 중요한 건 모든 걸 혼자 다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씩 천천히 배우면서 도움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는 말한다.
“처음에는 하나만 해보세요. QR결제든 블로그든. 해보면 별거 아니고, 그다음엔 자연스럽게 다른 것도 하게 돼요.”
디지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천천히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다.
전통시장에는 여전히 60~70대 상인들이 많다. 그리고 그분들 중 다수는 기술은 젊은 세대의 영역이라고 느끼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와 상관없이 디지털에 적응하는 상인들이 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은 단순한 기술 습득이 아니라, 고객과 다시 연결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지금 당장 못해도 괜찮다.
지금 시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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